<논평>



‘미등록(불법체류) 신생아’에 대한 인도적 차원의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




2012년 2월 15일자 여러 언론에는 합법 체류 자격이 없는 상태에서 출산한 베트남 여성이 브로커를 통해 ‘가짜 한국 아빠’를 만들어 아이의 한국 국적을 받았던 사례가 보도되었다.


이번 사건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핵심적인 문제는 갓 태어난 아이의 생명권의 문제이다. 적어도 국가는 그 사회에서 태어난 아이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한국 정부가 1991년에 비준한 UN아동권리협약 제2조에서 ‘자국의 관할권 내에서 아동 또는 그의 부모나 법정 후견인의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기타의 의견 민족적 인종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장애 출생 또는 기타의 신분에 관계없이, 그리고 어떠한 종류의 차별이 없이 이 협약에 규정된 권리를 존중하고 각 아동에게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합법 체류 신분이 아닌 어머니를 두었다는 이유로 아무런 보호장치없이 ‘미등록(불법체류) 신생아’가 되는 것은 아동의 권리와 신성한 생명권을 무시하는 것으로 국가가 책임져야할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산모가 미등록 신분인 상태에서 태어난 아이는 아버지가 한국 남성으로 특정되어 한국인 아버지에게 출생 등록이 되지 않는 한, 태어나자마자 ‘미등록 (불법체류) 신생아’가 된다.


이는 첫째, 합법 체류 신분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에게 어떠한 인도적 조치도 취하지 않는 정책이 갖고 온 결과물이다. 2007년에 제정된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제2조 1항은 “재한외국인이란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로서 대한민국에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령에 따른다면 합법 체류 자격이 없는 이주자는 재한 ‘외국인’의 범주에 해당되지 않는 모순이 발생하고 이들이 한국인은 아니므로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다.


이런 한국사회의 법적 테두리에서 미등록 상태의 외국인 여성이 출산할 경우 출산과정 및 신생아 건강에 관한 어떠한 사회보장도 받을 수 없다. 그 여성에게 합법 체류 자격이 없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그나마 아이 아버지가 한국 남성일 경우, 아이의 국적 문제와 사회보장 문제가 풀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처럼 ‘가짜 아버지 소개 브로커’까지 등장하고 있다. 아이 아버지가 역시 미등록 외국인이거나 여성이 아이의 아버지를 밝히지 않고 싶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 아버지 없이 출산할 경우, 이 여성과 아이에 대한 사회적 지원은 전혀 없다. 한국사회에서 한국인 남성 없이 출산하는 미등록 외국인 여성에게 출산은 그 자체가 또 다른 고통의 길로 들어가는 통로가 되고 말았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사회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도 관심도 없는 상태이다.


둘째, 한국사회에서 숱하게 쓰는 ‘다문화 가족’ 속에 외국인끼리의 결합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한국 국적 취득자와 결혼이민자 만을 다문화 가족으로 보는 협소함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에서 서로 다른 나라의 외국인끼리의 결합, 출생은 ‘문화 다양성’의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다문화 가족이 아니며, 한국 국적자와 외국인 배우자와의 결합만을 다문화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


다문화가족지원법(2008년 제정)에서 ‘다문화 가족’은 ‘결혼이민자와 출생 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 ‘귀화허가를 받은 자와 출생 시부터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자로 이루어진 가족’을 말하고, 위 법에서 말하는 ‘결혼이민자등’이란 ‘다문화가족의 구성원으로서 「재한외국인 처우 기본법」 제2조제3호의 결혼이민자, 「국적법」 제4조에 따라 귀화허가를 받은 자’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사회는 이주민이 140만명 이상 살고 있다. 이주민 140만명 시대에 한국 국적자와의 결합만을 중심으로 보는 국가 정책이 브로커를 통해 한국 국적을 만드는 모순을 발생시키고 있다.


한국 사회가 이제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놓고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가 되었음을 이번 사건이 웅변하고 있다. 체류 자격의 합법성 여부로 어떠한 사회보장도 이루어질 수 없고, 태어나자마자 ‘불법’이 되는 아이들의 존재에 대해 한국사회가 답해야 할 차례이다. 이를 계기로 국가의 영토안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는 ‘속지주의’와 혈통 중심으로, 부모의 국적에 따라 자녀의 국적이 결정되는 ‘속인주의’를 채택하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정책을 돌아보고 새롭게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사회가 속인주의 정책을 지속한다 하더라도 생명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UN 아동권리협약을 비준한 나라로서 책임있는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2012년 2월 16일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본부 및 지부

(경남이주여성인권센터, 대구이주여성인권센터, 부산이주여성인권센터, 

전남이주여성인권센터,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충북이주여성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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