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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주여성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걸음 – 국제결혼 지원조례 전면 폐지를 환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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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7. 22. (총 3쪽)

○ 안녕하십니까?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주여성의 인권증진과 권리확대를 위해 피해자 지원 및 보호, 정책제안, 연구 및 교육 등 활동을 하는 이주여성 NGO입니다.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서 성·인종차별적 요소를 담고 있었던 ‘국제결혼 지원조례’가 전면 폐지된 것을 환영하며, 입장을 발표합니다.

 

○ 이번 조례 폐지는 이주여성을 인구 감소나 농촌 문제 해결의 수단, 나아가 가부장적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로 삼아왔던 차별적 정책의 부당함을 확인하고, 이러한 관행이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 중요한 변화입니다.

 

○ 이 변화는 이주여성이 독립적 주체로서 존엄과 평등을 온전히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입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이번 조례 폐지를 계기로, 이주여성이 결혼이나 출산, 돌봄이라는 역할로 대상화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동등하게 시민으로서 존중받는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방향을 제안합니다.

 

○ 귀 언론사의 많은 관심과 보도 요청드립니다.

성  명

이주여성의 존엄과 평등을 위한 걸음

국제결혼 지원조례 전면 폐지를 환영하며

  2025년 4월 14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전국 25개 지방자치단체가 ‘국제결혼 지원조례’를 모두 폐지하거나 폐지 확정을 공식화했다고 밝혔다. 이는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2006년 성·인종차별적 국제결혼 광고에 반대하며 시작한 운동으로부터 20년 가까운 노력의 굵은 결실이다. 우리는 긴 여정에 함께해 온 모든 분들과 이 의미 있는 변화를 진심으로 환영한다. 이번 조례 폐지는 단순히 하나의 제도가 사라진 변화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을 ‘누군가의 아내’, ‘출산과 돌봄 노동을 담당할 존재’로 협소하게 규정해 온 오래된 틀 중 하나를 멈추겠다는 사회의 중요한 진전이다. 또한, 이주여성들이 ‘농촌 총각의 결혼 상대’나 인구문제 해결을 위한, 혹은 가부장적 질서 유지를 위한 도구가 아님을 인식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 변화를 통해 이주여성들이 ‘필요할 때만 호출되는 존재’로만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가는 시민으로 존중받아야 함을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국제결혼 지원조례는 2006년부터 농촌 지역 ‘미혼’ 남성의 결혼을 지원한다는 명분 아래 제정되었다. 중개 수수료와 결혼 비용을 지원하며, 한국 남성들과 외국인 여성의 결혼을 장려하는 이 정책은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라는 구시대적 발상에서 출발해 여성, 특히 이주여성을 지역 인구문제와 가부장적 사회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왔다. 조례는 국민인 농촌 남성의 결혼을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결혼 이후 농촌 지역에 정착한 이주여성에게는 가사노동, 농업노동, 출산과 육아, 간병과 돌봄의 역할을 당연한 의무처럼 부과해 왔다. ‘한국 남성의 아내’, ‘아이를 낳고 돌볼 사람’, ‘농사짓고 살림할 사람’으로 규정되었기에 이주여성의 권리나 존엄을 고려하는 내용과 노력은 지자체의 정책에서 존재하기 어려웠다. 이 과정에서 이주여성의 삶과 언어, 문화, 경력이나 미래는 쉽게 지워지며 ‘누군가를 위해 필요한 존재’로 대상화되어 왔다.

 

  이러한 제도는 상업화된 국제결혼 중개업과 맞물려, 이주여성을 ‘선택되고, 거래되는 존재’로 만들어왔다. 조례가 유지된 지역에서는 이주여성을 향한 성·인종차별적 시선과 태도가 생겨나거나 고착화 되었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 ‘한국 남성에게 도움을 받기 위해 결혼했다.’, ‘아이 낳으러 왔다.’, ‘일하러 온 사람이다.’, ‘혜택을 받으니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는 왜곡된 인식이 강화되어왔다. 이주여성의 기본적인 권리를 침범하고, 평등의 뿌리에 있는 가치를 흔드는 국제결혼 지원조례는 여러 비판과 시대의 눈치를 보며 이름을 조금씩 고쳐왔지만(“농촌 총각 국제결혼 지원조례 – 미혼 남성 국제결혼 지원조례 – 미혼자 국제결혼 지원조례 – 국제결혼 지원조례” 흐름의 잦은 변천을 거쳤다.) 차별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기에 우리는 꾸준히 조례의 ‘폐지’를 요구해왔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이주여성은 결혼, 출산, 돌봄이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만 존재를 인정받아 왔다. 필요할 때 사회적으로 호명되고 그렇지 않을 때는 너무나 쉽게 지워졌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그 외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 이혼한 여성, 일하는 여성, 공부하는 여성, 공동체 안팎에서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여성들은 여전히 제도나 정책 속에서 자주 배제되거나, 상상되지 않는 존재이다. 우리는 국제결혼 지원조례 폐지가 이주여성을 고정된 성 역할에 가두어 온 거대한 구조에서 벗어나는 출발이라 선언한다. 이미 이주여성들은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당연한 그 사실을 제도와 사회가 따라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조례 폐지를 요구하는 과정에서, 단순히 차별적 제도의 폐지만을 목표로 삼지 않았다. 이주여성이 보호의 대상이나 타인의 부속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주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한 긴 싸움이었다. 물론 구조적인 차별과 권력의 불균형으로 많은 이주여성이 차별과 폭력을 경험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이유로 모든 이주여성을 피해자로만 규정하거나 일률적인 시선으로 대상화하는 방식은 경계해야 한다. 우리는 피해를 드러내고 줄이기 위해 노력하는 동시에, 이주여성의 삶이 다채롭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 이주 경로, 결혼 여부, 체류 자격, 가족 형태에 관계없이 모든 이주여성은 존중받고, 차별 없는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

 

  이번 조례 폐지는 이주여성 당사자들의 용기 있는 목소리와 여성·이주 시민사회단체의 오랜 연대의 힘으로 이뤄낸 변화이다. 이 성취는 한국 사회에 명확한 메시지를 던진다. ‘국민의 필요’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로서 이주여성을 상상하는 시대는 끝났다. 이주여성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받고 평등해야 한다는 가장 단순하고 명확한 이 원칙에, 한국 사회는 더 많은 영역에서 응답해야 한다.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 없는 세상을 향한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국제결혼 지원조례 하나쯤 없어졌다고 차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는 앞으로도 이주여성이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조건과 권리를 만들어가기 위해, 현실의 무거운 모순과 딜레마 속에서도 균형을 고민하며 이주여성 인권운동의 속도를 만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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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