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법/불법’ ‘노동/결혼’ 교차하는 여성의 이주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산업연수생이었던 필리핀 여성 레이첼

위라겸  | 기사입력 2020/07/28 [16:38]

*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통해 한국에 입국했다가 본국으로 되돌아간 <귀환 이주여성을 만나다> 기획 연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됩니다. 이 기사의 필자 위라겸 님은 전남여성가족재단 연구원입니다.

한국 이민정책 역사가 담긴 레이첼의 가방

귀환 이주여성 현지 조사를 하기로 결정한 이후 조사팀이 걱정했던 것 중 하나는 ‘과연 인터뷰에 응할 여성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국내 이주여성 상담소나 쉼터에서 여성들의 귀환을 지원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쉽사리 연락이 닿지 않겠냐는 기대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귀환 이후에도 연락이 지속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연락이 닿았다 하더라도 시간을 맞출 수 없어서, 또는 인터뷰 장소까지 올 돈이 없어서 등 다양한 이유로 인터뷰가 성사되지 못했다. 반면 SNS 등 이주여성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를 하자, 순식간에 많은 지원자가 몰려 이들 가운데 인터뷰 참여자를 정하느라 고심한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는 또 다른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우리는 일단 현지 여성들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인터뷰 참여자들은 단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우릴 만나러 온 게 아니었다.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고 찾아온 것이었다. 이미 대사관에도 찾아가고 변호사를 만나보고 한국에 있는 지인에게 부탁해 사정을 알아보고, 백방으로 노력해온 여성들도 있었다.

▲ 이주여성노동자를 지원하는 필리핀 단체 BATIS 센터를 찾아가서 귀환이주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통역 지원 이보현.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필리핀에서 만난 레이첼(가명)도 그 중 한 명이다. 인터뷰 장소에 나온 그녀의 가방에는 그동안 한국에 가기 위해, 자녀의 출생등록을 바로잡기 위해, 남편과 사별 이후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아온 서류가 한가득이었다. 20년 넘게 이어져 온 그녀의 이주 경험 속에는 한국의 이민정책과 국제결혼 정책의 역사, 그리고 아시아 여성의 노동과 결혼을 통한 이주의 역사가 그 서류의 두께만큼이나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귀환 이주여성의 삶은 단순히 1)한국 남성과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2)한국에서 살다가 무언가 문제가 생겨 본국에 돌아가게 되었다. 3)그런데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 즉 한국 정부와 사회가 지원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이렇게 정리되지 않는다. 이주와 귀환, 또다시 이주,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이해하기 위해 레이첼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자.

첫 합법 외국인근로자인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오다

레이첼은 1994년 봄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당시 스물한 살이었다. 그 나이에 여자 혼자서 외국에 일하러 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진짜 집에 돈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언니들은 일찍 결혼해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동생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집안에서 돈 벌 사람은 그녀뿐이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일하러 간 곳은 필리핀에서 다니던 기업의 공장이었다. 필리핀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 회사, 이른바 해외투자기업에서 일한 것인데 1994년은 이 해외투자기업 근로자가 처음으로 한국에 합법적으로 일하러 올 수 있게 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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