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탁티홍응옥 사건에 대한 우리의 입장>


   또 한명의 베트남 여성이 한국 땅에서 비명 속에 삶을 마감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하였다. 채 피워보지도 못한 스무 살의 짧은 삶은 남편이 휘두른 흉기에 무참히 난타당한 채, 낯선 땅에 버려진 한 구의 시신으로 마감되었다. 2007년 남편에게 살해당한 후안 마이의 기억이 채 가시지도 전에 이어 발생한 참혹한 사건이기에 우리는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다.

 
 살해된 여성은 탓 티 홍 응옥((Thach Thi Hong Ngoc) 이라는 20살의 젊은 베트남 여성으로 2010년 2월 호치민에서 47세의 한국 남자 장모씨를 만나 단 한 번의 선을 보고 관행대로 결혼식을 올린 후, 지난 7월1일 한국에 입국했다. 문제는 남편인 장씨가 8년 동안 정신분열증 증상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정신질환자였다는 사실이다. 남편 장씨는 아내를 향해 심한 구타를 가한 후 누군가 “아내를 죽여라”라고 말하는 환청을 듣고는 흉기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였다. 응옥씨가 한국에 와서 남편과 함께 산지 겨우 7일째 되는 날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이 어이없는 참사에 직면하여 우리는 한국사회 구성원으로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안타까움, 그리고 부끄러움과 책임감을 느낀다. 이 참상은 어떤 면에서는 이미 예고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우리, 결혼이주여성의 인권문제에 관심하는 이주와 여성단체들은 이미 수 차례 현행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의한 파행적인 결혼이 초래할 문제에 대해 정부에 문제제기를 했으나 적극적인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오늘의 비극을 맞게 되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오늘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결혼이 갖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다시 한 번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첫째, 현행과 같은 국제결혼 형태를 묵인하고 있는 정부의 태도이다. 사실, 한국과 국제결혼을 진행하는 대부분의 아시아 나라들에서는 중개업체에 의한 결혼을 자국의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더욱이 그 중개업체들의 중개행태가 지극히 인신매매적이라는 사실은 법의 차원을 넘어서 인권차원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제정으로 국제결혼중개업의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비록 정부가 제정한 관리법이 국제결혼중개업체의 활동을 일정 부분 규제하고 처벌하려는 목적과 의도를 담고 있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중개업체의 활동에 합법성을 부여한 측면이 강하다. 여전히 불법적인 결혼중개 관행이 횡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관리, 감독이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중개업체들은 정부에 등록된 업체로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일반인들로부터 법적ㆍ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기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소위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중개업체 외에도 지하에서 중개활동을 하고 있는 미등록 업체 및 개인 브로커들도 상당수에 이르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국제결혼 중개업 시장은 통제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남겨지고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제결혼을 하는 당사자들이 질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번에 또 다시 발생한 베트남 여성 살해 사건은 이러한 상황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둘째, 국제결혼 중개업체의 결혼 진행 관행에 관한 문제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중개업체는 결혼 중개 대상인 두 사람 모두에게 상대방에 대한 신상정보 즉 병력, 범죄경력, 직업, 나이, 재산의 정도 등을 각각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통ㆍ번역하여 제공할 의무가 있다. 현행법은 이를 어길 시 벌금 또는 징역에 처해질 수도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이러한 사항들은 거의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오로지 한국 남성에게 선택되어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 중의 한 명일 뿐, 구체적인 정보를 기반으로 미래의 남편을 스스로 선택할 가능성이나 권리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들이 결혼할 배우자가 혼인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지에 대해 확인할 방법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번과 같은 사건은 언제든 또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삶이 아니라 이윤에만 목적이 있는 대부분의 중개업체들의 행태를 철저히 단속, 개선할 수 있는 확실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정부가 국제결혼 여성들에 대한 폭력이 이처럼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제결혼 중개 관련법을 만들어 중개업체들에게 ‘유사 합법성’을 부여하고 그 결과는 방치한다면, 인권침해와 인신매매적 행위의 간접적 협조자 내지는 공모자라는 정치적ㆍ윤리적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을 통절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셋째, 국제결혼을 원하는 당사자들과 그 가족들의 의식 문제, 더 나아가 한국사회의 결혼에 대한 의식 문제이다.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라는 이유로, 혼자 힘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고, 심지어 오랜 시간 정신질환이나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있는 아들이나 형제를 말 한 마디 통하지 않는 외국 여성에게 떠맡기듯이 결혼을 시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인신매매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개인 차원에서나 사회 차원에서나 결혼에 대한 보다 성숙한 이해가 확산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정부나 지역사회가 국제결혼을 원하는 당사자들이나 그 가족들에게 사전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는 폭넓은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남편에 의해 살해된 후안 마이 재판을 담당하였던 판사의 말처럼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미숙함의 한 발로다. “노총각들의 결혼대책으로 우리보다 경제적 여건이 높지 않을 수도 있는 타국 여성들을 마치 물건 수입하듯이 취급하고 있는 인성의 메마름, 언어문제로 의사소통도 원활하지 못하는 남녀를 그저 한 집에 같이 살게 하는 것으로 결혼의 모든 과제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무모함. 이러한 우리의 어리석음은 이 사건과 같은 비정한 파국의 씨앗을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21세기 경제대국, 문명국의 허울 속에 갇혀 있는 우리 내면의 야만성을 가슴 아프게 고백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금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번 사건이 단지 한 정신질환자의 우발적 아내 살해사건으로 마무리 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다음과 같이 정부와 사회에 촉구하는 바이다.


우리의 요구

 – 한국 정부는 국제결혼 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인신매매적 성격을 근절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 이번 결혼 과정에서 중개업체가 최소한 현행 법률만이라도 정확히 준수하였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불법적 관행을 여전히 일삼고 있는 국제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경각심과 반성의 목소리가 사회 전반에 폭넓게 퍼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  중개업의 관리, 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가족부를 비롯해 정부와 각 지자체가 이들에 대한 철저한 관리 감독 및 엄격한 법 집행의 태도를 분명히 함으로써 더 이상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 국제결혼을 희망하는 한국인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철저한 사전교육을 실시해서 외국인 배우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혼인생활을 할 수 있도록 조처를 취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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