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출입국관리국의 결혼이주여성 체류권 부여



                                                                                                                                                                                              한국염/대표



요즈음 정가에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말이 간간히 들린다. 자기만의 편견으로 사물을 판단하고 그 기준과 다른 것은 배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프로크루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서, 그 이름의 뜻은 ‘늘이는 자’ 또는 ‘두드려서 펴는 자’다. 프로크루스테스는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나그네가 지나가면 자기 집에 불러들여 쇠로 만든 침대에 눕게 하고는 그 침대 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다리 길이에 맞춰 잘라버리는 방법으로 나그네를 죽인 악한이다. 프로크루테스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를 이 방법으로 죽이려다 거꾸로 자기가 죽임을 당하였다. 이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라는 말은 모든 것을 자기가 정해놓은 틀에 따라 판단하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배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다. 사전적 의미는 “편견과 아집, 고정관념에 의한 횡포에 빗대는 관용구 로 인용되고 있다.


 

그런데 이주민에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를 적용하는 곳이 있다. 바로 출입국관리소다. 결혼이주여성에게 적용되는 출입국관리소의 프로쿠루스테스의 침대란 바로 “정상적인 혼인생활유지”라는 잣대다. 정상적인 혼인생활이란 이유여하를 불문하고 혼인관계를 유지한다는 뜻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 부산의 출입국관리국은 성폭력피해자인 필리핀출신 여성결혼이민자에게 법무부식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Procrustean bed)’ 원칙을 적용하여 체류연장을 불러하였다가 시민단체들의 항거에 직면한 후에야 입장을 바꾸어 이 여성에게 체류자격을 연장해주겠다고 하였다. 그 사건의 경과는 이렇다.


2006년 결혼해 남편 ㅇ씨(43)와 함께 입국한 필리핀 여성 C 씨(가명·25)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4개월 만에 집을 나갔지만 불법체류자로 붙들려 다시 남편을 만나게 됐다. 2008년 7월 남편 ㅇ씨는 자신의 집에서 아내 C씨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 아내가 생리 중이라는 이유로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자 임씨는 가스 분사기와 과도를 들고 그녀를 죽이겠다고, 신체 특정 부위를 잘라버리겠다고도 협박했다. 협박에 못이긴 그녀는 결국 강제로 남편과 성관계를 했고 이후 남편을 성폭력으로 고소했다. 이 사건에 대해 2009년 1월 16일 부산지법 제5형사부(재판장 고종주 부장판사)는 필리핀 여성인 아내를 흉기로 위협해 성폭력을 가한 혐의로 기소된 한국인 남편에 대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 재판에서 먼저 형법상의 ‘부녀’에 ‘혼인 중의 부녀’가 제외된다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며 현행법으로도 부부강간을 처벌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또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여성의 ‘정조’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며 아내 또한 이 권리가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90년대 들어 영국과 독일도 아내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하는 추세이고, 1993년 48차 유엔총회가 아내에 대한 강간을 여성에 대한 중대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유엔 인권위원회가 1999년 아내에 대한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에 유감을 표시한 점도 근거로 들었다. 재판장 고 판사는 “이번 사건처럼 국제결혼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강간죄 적용에 국제적인 기준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며 결국 유죄선고를 내렸다. 그동안 혼인 관계에 있는 사람은 민법상 동거의무, 즉 성관계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는 점을 감안해서 부부간에 강간죄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판례였다. 2004년 서울중앙지법이 아내를 성폭행한 남편에 대해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한 경우는 있으나 부부관계에서 아내의 성적자기결정권을 근거로 아내 강간을 인정한 첫 사례였다. 하지만 남편 ㅇ씨는 재판직후 C씨에 대한 성폭행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C씨가 결혼생활에 충실하지 않아, 내가 국제결혼으로 피해를 본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즉각 항소장을 제출한 후 항소심을 앞두고 남편이 자살하는 바람에 C씨는 주변으로부터 남편을 죽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감수하며 살아야 했다.


C씨는 지난 2013년 5월 29일 만료를 앞두고 출입국관리사무소에 체류연장허가신청을 했다. 남편 사망 이후 2012년까지 체류연장을 해 주었던 출입국은 조사를 한다는 명목으로 체류연장허가를 지체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남편의 사망 책임이 C씨에게 있다며 체류 연장을 해줄 수 없다며 구두로 불허통보를 했다. ‘왜 체류연장을 불허하느냐’는 질문에 담당자가 제대로 답변해 주지 않자, C씨는 답답한 마음에 부산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이하 지원센터)를 찾아 도움을 요청했다.


상담을 접수 받은 지원센터에서는 8월 21일, 출입국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재차 불허 사유를 묻고, 본인에게 구두 통보가 아니라 불허통지서를 문서로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담당자는 ‘알려줄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몇 차례 전화 통화 끝에 8월 27일 오후 C씨와 지원센터 상담원이 함께 출입국을 방문하였을 때 담당자 K씨는 출입국 직원이 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하기 힘든 설명과 답변을 하였다. 부산출입국관리사무소(이하 출입국)는 부부강간 피해자 C씨의 체류연장불허결정에 따른 문의에 대한 답변으로 당사자 C씨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정상적인 혼인생활이 아주 중요해요. 함께 사는 부분, 경제적인 부분, 함께 식사하는 부분, 그 다음에 성관계 부분까지 다 포함되는 게 부부생활이에요. 일단 부부관계가 좋지 않았다면 이혼을 선택했어야지, 이혼을 선택하는 대신 남편을 특수강간(부부강간)으로 신고하고 남편은 그게 억울하다고 죽었어요. 그런 결과로 봐서 정상적인 부부로 보이지 않아요. …… (중략) …… 요 앞에 이런 내용을 알았다면 불허했겠지만 요 앞 담당자는 조사를 안했어요. 이상하다 싶어 우리가 이번에 조사했어요.” 라고 출입국직원은 C씨의 체류연장 불허사유를 밝혔다.


 

또 출입국 직원은 “최대한 빨리 출국했다가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들어오던지 일하러 들어와요. 우리가 일을 안 했어요. 여자가 불쌍해서 그냥 준거에요. 조사를 해보니 가해자에요.”라고 확인 사살까지 한 셈이다.


C씨는 남편의 사망으로 심각한 정신적 충격 속에 지난 몇 년을 숨죽이며 살아온 C씨에게, 법원에서도 분명히 피해자라고 판결한 C씨에게 출입국 직원은 ‘가해자’라고 하며, 남편의 사망책임을 물어 체류연장을 불허하는 대단한 월권을 행사하였다. C씨는
“최대한 빨리 출국했다가 한국 사람과 결혼해서 들어오던지……”라는 말에 지독한 수치심과 모멸감을 느껴 결국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출입국을 나와야 했다. 이미 남편으로부터 성적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는 C씨와 같은 피해자에게 정부기관인 출입국직원이 심각한 성적 수치심을 느끼는 발언으로 한 번 더 피해를 당한 것이다. 이처럼 출입국직원의 낮은 인권의식과 젠더 감수성(gender sensibility)은 가정과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과 성폭력의 피해여성들에게 공공기관 공무원들이 한 번 더 피해를 입히는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부산에서 발생한 이번 사례는 그동안 얼마나 출입국관리국이 결혼이민자의 체류권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황포를 일삼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남편이 죽은 책임을 아내에게 묻는 조선근대적인 발상법은 둘째치더라도 죽은 남편과 정상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류연장을 해주지 않는 출입국관리국 직원의 태도는 그야말로 힘없는 이주여성에게 가해진 공권력의 횡포에 불과하다. 9005년 9월 25일 제정된 간이귀화법에 의하면 혼인의 귀책사유가 이주여성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입증될 경우 체류는 물론 영주자격과 귀화를 허락하도록 되어 있다. C씨는 부산법원에서 엄연히 ‘아내강간’으로 인정한 사건으로 남편을 가해자로 규정한 사건이기 때문에 혼인파탄의 귀책사유는 당연히 남편에게 있는 것이다. 남편이 자살해 죽은 책임까지 아내에게 물어 체류권을 불허하는 것은 오히려 법무부의 직무유기요, 공권력남용이다. 엄연히 규정에 명시되어있는 법조항 자체도 정상적인 혼인생활을 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면하는 출입국직원의 자세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출입국직원이 만든 ‘프로쿠루테스의 침대’에 의해 이주민의 체류권이 결정된다면 한국에서 이주민 인권은 반인권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비단 C씨의 경우만이 아니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직원이 휘두르는 ‘어떠한 경우라도 혼인생활유지’라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난관에 봉착한 이주여성들이 꽤있다.

 


다행히도? 부산외국인근로자센터를 비롯한 시만단체의 항의에 직면한 부산출입국사무소측이 “비자연장 심사 과정에서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며 “A 씨와 면담을 갖고 비자 연장을 허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C씨에게 체류연장이 하가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차제에 출입국사무소직원들에 대한 성폭력방지 인식개선교육과 아울러 “ 절대혼인생활유지”라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가 없어지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