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 ‘다문화’ 맞아요?

허오영숙 /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활동가

지난 달, 같이 일하던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 S가 아이를 낳았다기에 사무실 사람들과 문안을 다녀왔다. 금방 임신했을 때 입덧하는 모습부터 만삭이 될 때까지 모습을 같이 일하며 보아왔던 터라 그녀의 출산은 반가운 소식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사무실을 그만 두기 전, 출산 뒷바라지를 염려하는 그녀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함께 나누기도 했다.

그녀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이주여성들은 친정이라는 ‘쉬어 보이는 울타리’가 한국에 없기 때문에 아이를 낳은 뒤의 출산 바라지가 고민이다. 친정 다음으로 떠오르는 시어머니는 여성들에게 쉽지 않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아쉬운 대로 부탁을 하고 싶어도 시어머니가 연로하시거나 안 계셔서 아예 부탁을 할 수 없는 경우들도 있다. 경기도에 사는 S는 시집이 전라도쪽인데다 시어머니가 계시지 않은 까닭에 애초에 시집을 통한 산바라지는 생각지도 않고 있었다.

결국 방법은 조산원에 들어가거나 산바라지를 해 줄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이주여성들은 한국사회의 정보와 네트워크망이 촘촘하기가 어려워 믿을 만한 조산원이 어디인지 찾기 쉽지 않다. 여섯 살 큰애를 두고 조산원에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그녀는 결국 집으로 와 줄 산모도우미를 구했다. 그런데 그 산모 도우미 ‘언니’가 필리핀 사람이란다. 당연히 한국인 산모 도우미보다 적은 임금이다.

파레나스라는 필리핀 출신의 여성학자는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가사노동자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을 연구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세계화의 하인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파레나스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제1세계 서구 여성들이 사회 진출로 인하여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이라 여겨지던 돌봄 영역이 비게 되자 아시아 여성들 (특히 필리핀, 인도네시아 출신의 여성가사노동자)들이 그 빈 영역을 채운다고 본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단지 서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의 현실에서 나타나고 있음을 S의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도 돌봄노동의 공동화를 메꿀 인력으로 이주여성이 상상되며(김현미 2008), 실제로 그러함을 말해준다.

밥 먹고 하는 일이 이주여성들과 지내는 일이라 웬만한 문화 다양성에 익숙해져 있는 내게, 한국사회는 ‘다양성의 다문화’로서가 아니라 ‘획일화의 다문화’로서 충격을 주곤 한다. S의 집에서 나는 또 한번 획일화의 다문화로서의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다.

내용인즉, 산모도우미로 3주간 S를 보살피는 ‘필리핀 언니’가 베트남 출신 산모 S에게 해 준 음식은 미역국이었다. S는 일주일 넘게 ‘뽀얀 우골 국물이 우러난’ 미역국만 먹고 있다고 하였다. 한국에서 사골 미역국은 최고의 산모 음식이지만 필리핀에서도, 베트남에서도 미역국은 산모음식은 아니다. 이주여성들 중에는 안 그래도 애 낳고 힘든데 입에도 맞지 않는 미역국만 줘서 서러웠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대부분이 그 말 끝에 덧붙이긴 한다.

‘이제는 적응도 되고 이해도 하는데… 그땐 정말 힘들었어, 한국 말도 잘 모를 때라 표현도 못하고…’

이런 생각과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님을 우연히 시집에서 발견했다.

지구의 해산바라지

지금

베트남에서 몸 푼 베트남인 산모는

친정어머니가 볶아 온 돼지고기를 먹고요

지금

필리핀에서 몸 푼 필리핀인 산모는

친정어머니가 졸여 온 닭고기를 먹고요

지금

태국에서 몸 푼 태국인 산모는

친정어머니가 가져 온 코코넛 야자를 먹고요

지금

캄보디아에서 몸 푼 캄보디아인 산모는

친정어머니가 조리한 해산물 찜을 먹고요

지금

한국에서 몸 푼 한국인 산모는

친정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요

지금

한국에서 몸 푼 베트남인 산모와

한국에서 몸 푼 필리핀인 산모와

한국에서 몸 푼 태국인 산모와

한국에서 몸 푼 캄보디아인 산모는

시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요

아, 시방

아기들은 똑같은 울음소리로 울고요

– 하종오 시집 『제국』 (문학동네 2011)

여러 아시아 나라의 산모들에게 해산 음식을 준비해 주는 사람이 친정어머니만은 아닐 수 있고, 이 글의 주인공 S처럼 모든 산모들이 시어머니가 끓인 미역국이 아니라 산모도우미 ‘필리핀 언니’가 끓인 미역국을 먹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시에서 말하는 것처럼 한국사회는 정말로, 정말로 획일적인 문화를 ‘다문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다문화’ 라는 말이 홍수처럼 쓰이는 시대에, ‘다문화’ 라는 말은 가장 많이 쓰는 일을 할 것 같은 이주여성인권센터에서 활동하면서 그 ‘다문화’ 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안쓸까 하고 매일 매일 고민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