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마리아>에는 수많은 배가 나온다. 
언제부터인가 여성의 배는 섹시한 대상이 되었다. 드러낼 수 있을 만큼 날씬한 배를 가진 여성은 우상이 되었다. 
어느새 그 배가 아름답다고 생각되고 매일 매일 다이어트를 꿈꾸며 따라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본래 배가 가진 역할과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배는 이주여성과 같은 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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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은 자신의 본국에서의 문화와 역할은 잊고 다른 나라의 문화와 역할에 완전 동화될 것을 강요당한다. 
여성의 배는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장기를 담고 있고, 또한 한 생명을 잉태하여 세상 밖으로 나갈 때까지 담고 있는 생명의 배임을 잊고 관능과 자본의 대상이 된다.
많은 여성들이 배를 곪지 않기 위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노동을 위해 배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다. 
레드 마리아는 배에 힘을 주고 살아가는 열명의 여성이 서로 다른 언어로, 서로 다른 생활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청춘을 바치며 일해온 직장으로 부터 갑작스레 해고를 당한 종희와 사토. 그들은 서로 다른 국가에 있으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고향을 떠나 노동을 위해, 삶을 위해 이주해온 이주여성 모니카와 제나린은 자신의 모습을 잊지 않으면서 새로이 속한 사회에서 역할을 찾아나간다. 
50년 전 일어난 제국주의 일본군에 의한 집단 강간을 말하지 못한 리타, 15살에 아이를 나아야했던 클롯. 그들이 고통받은 것은 자궁을 가졌다는 이유다. 
희영과 클롯의 친구들은 더욱 배에 힘을 준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희영과 클롯의 친구들은 성노동으로 생명을 유지한다. 그들의 자궁이 그들을 살리고 있다. 
집이 철거되는 그레이스는 1년 반동안 새집을 짓기 위해 8칸의 벽돌을 올렸다. 그래도 괜찮다. 그에겐 집이 철거되면 초대할 친구들이 있다. 
집이 없는 이치무라도 행복하다. 공원에서 사는 이치무라는 ‘직업’은 없지만 하루종일 자신을 돌보며 다른사람과 생각을 나누고 일상을 나누며 바쁘게 노동한다. 우리가 직업을 갖고 일을 하는 것은 그처럼 일상을 사랑하는 이들과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닌가.  
순자는 하루 종일 타인의 일상을 돌보는 요양간병인이다. 그래도 그역시 즐겁다. 그는 그가 돌보는 이들과 행복하다. 
하지만 자본은 그것을 방해한다. 순자가 자신의 일에서 해고를 당한다면 순자는 사토와 종희가 되고, 그레이스가 되고 희영이 될 지도 모른다. 이치무라는 그런 사회의 수레바퀴에서 탈출했다. 이치무라가 자신의 소개를 ‘노숙자’가 아닌 예술가나 운동가라고 했다면 그가 일도 안하고 사회 덕에 살아간다고 말하던 ‘일하는 여성의 모임’은 그녀를 좀 더 환영했을 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노동은 배에 힘을 주는 일이다.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한 생을 멋지게 살아내기 위해.
그런 모든 여성들에게 보낸다.
깔라구란다카(사랑해)! 마할기타(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