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라!

-우리 사회의 무모함과 비정함으로  살해당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을 생각하며!-

                                                               한국염


20살의 한 베트남 여성이 남편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어이없는 소식을 접하는 순간  사태를 이 지경에가지 이르게 한 우리사회의 무모함과 비정함에 대한 분노가 확치밀었다. 다음에는 허탈감과 더불어 이런 일을 당해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느닺없이  “못다 핀 꽃 한 송이”라는 노래말과 더불어 죽은 이에 대한 안스러움과 안타까움이 밀려들면서 가슴 깊숙이에서 ‘당신의 죽음이 못다 핀 꽃 한송이가 아니라 존엄의  꽃으로  제발 다시 피어나라!’하는 간절함이 일었다.   

지난 7월 9일 미명에 탓 티 황옥((Thach Thi Hong Ngoc)이라는 한 베트남 여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던 남편에 의해 살해되었다. 한국말이라곤 “오빠”라는 말밖에 모른 상태에서 한국에 온지 겨우 일주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탓 티 황옥은 2010년 2월 7일 중개업체의 소개로 47세의 한국 남자 장모(J)씨를 만나 다음날 결혼을 결정하고 2월 18일에 호치민의 한 식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지난 7월1일에 혼인동거비자를 받고 한국에 입국했다. 그런데 그 남편은 8년 동안 정신분열증으로 약을 먹고 있는 환자로서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경력만도 57회였다. 응옥은 이런 사실을 모른 채 결혼해서 한국에 왔다. 남편은 응옥이 한국에 오기 닷새 전에도 어머니를 공격했다고 하는데, 신부가 걱정할까봐 약을 먹던 것을 중지했다고 한다. 이 날도 남편 장씨는 정신착란 상황에서 아내를 향해 심한 구타를 가한 후 누군가 “아내를 죽여라”라고 말하는 환청을 듣고는 흉기를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였다고 한다. 아내를 살해한 후 남편이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신고를 해서 응옥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낯 선 이국땅에서 꿈을 이야기할 겨를도 없이 목숨을 빼앗겨버렸다. 

황옥의 부모님 말에 의하면 황옥은 집이 가난해서 스님들의 도움으로 학교에 다녔다.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님 일을 돕기 위해 학교를 그만 두고 호치민에서 일을 해서 매달 부모에게 돈을 보냈다. 그러던 차 황옥의 어머니가 중개업을 만나게 되었고 황옥이 한국인과 결혼하게 된 것이다. 결혼하기 전 왕옥의 부모는 사위 장씨로부터 약 25만원의 돈을 받았다. 이 돈의 반은 호치민까지 오는 교통비로 썼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사위가 500달러를 더 주었다고 한다.  

한국에 온 다음날인 7월 2일 응옥의 부모는 응옥에게서 잘있다는 전화를 받았다. 며칠 후 황옥의 부모가 전화를 했는데 받는 사람이 없어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자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잘 못먹었다. 그랬는데 9일 부모가 일하는 직장의 직원이 응옥이 부부 싸움을 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좀 있더니 결혼중개업자가 와서 “황옥과 남편이 말다툼을 하다가 남편이 황옥의 빰을 때려 황옥이 바닥에 넘어졌다. 그랬는데 고 재수없게도  얼마 전 수술한 황억의 맹장 부위가 바닥에 있던 날카로운 물건에 찔려 응옥이 사망하고 말았다.”고 전했다. 순간 황옥의 부모가 ‘우리 황옥이는 맹장 수술한 적이 없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마침 황옥이처럼 한국사람과 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는 황옥의 친구가 한국 방송에서 황옥이 남편에 의해 살해당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황옥의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황옥은 착하고 효심이 있는 아이였다. 집이 가난해서 딸의 행복을 위해 우리 창자가 에이는 듯한 아픔을 참고 결혼을 시켰다. 그런데 아이가 이리 되고 보니 우리 마음이 칼로 베는 것 같이 아프다. 머나먼 남의 땅에서 죽음을 당하게 한 것이 너무 후회가 된다.”   하도 울어서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황억의 어머니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했다. 14일 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한국에 온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같이 슬프고 아프다.”고 통곡을 했다.


우리가 베트남 여성 황옥 씨의 어이없는 죽음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더 하는 이유는 이번 사건이 어쩌다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2007년 후안 마이라는 베트남 여성이 남편에게 맞아 갈빗대 18대가 불어져서 죽은 사건이 있었다. 그때 우리 사회가 국제결혼에 대해서 잘못된 행태들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후안 마이의 죽음과도 같은 일이 또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후안 마이 사건 후 2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제결혼의 대부분은 매매혼적 성격과 더불어 많은 인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의 한 복판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이윤추구를 위한 도구로  삼는 국제결혼중개업의 착취구조와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에 무시하는 한국인들의 인종차별적 가치관이 있다. 우리 사회가 이웃 아시아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감이라도 있었다면  혼인생활을 할 기본적인 자세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손쉽게, 함부로 결혼을 해서 아시아여성의 인격과  생명을 해치는 죄를 저지르도록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방치 이면에는 한국여성과 결혼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인 한국남성의 결혼문제를 준비없는 국제결혼으로 손쉽게 해결해 보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무모함, 가난한 나라의 여성은 함부로 해도 된다는 우리 사회의 비정함이 깔려있다. 이러한 무모함과 비정함이 ‘후안 마이’나 ‘탁 티 황옥’ 살해사건처럼 파국을 불러오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알지도 못한 사람을 따라 낯 선 나라에 와서 사연도 모르는 채 목숨을 잃어야 했던 탓 티 황옥 씨의 명복을 빌며 그의 비참한 죽음 앞에 못다 핀 꽃 한 송이 노래 띄워 보낸다. 그의 죽음이 우리 사회의 야만성과, 미성숙성, 이중성을 각성시켜 ‘인간존중’, ‘아시아 여성의 존엄성’이라는 한 송이 꽃으로 다시 피어나기를 바라면서.

                              

언제 가셨는데 안 오시나 한 잎 두고 가신님아

가지위에 눈물 적셔놓고 이는 바람소리 남겨놓고

앙상한 가지 위에 그 잎 새는 한 잎

달빛마저 구름에 가려 외로움만 더해가네

밤새 새소리에 지쳐버린 한 잎마저 떨어지려나

먼 곳에 계셨어도 피우리라 못다 핀 꽃한송이 피우리라


2010년 7월 1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