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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LP 프로그램에 참가하다.


  참 운이 좋았다. 작년에 미국대사관에서 연수 프로그램 대상자에 추천하고 싶다고 프로필을 보내달라고 해서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보냈고, 그 후에 대사관 직원이 와서 두 번의 인터뷰를 했다. 물론 통역을 통해서 이루어져서 불편하지 않은 인터뷰였다. 미국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 미국 연수프로그램이 있는데 참여할 수 있는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앞으로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 등 이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1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어서 그냥 스쳐간 일이었다고 생각할 무렵에 미국대사의 초청장이 보내졌다. 그리고 알게 된 것이 IVLP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미국 정부가 1940년부터 진행해온  국제방문자프로그램(IVLP : International Visitor Leadership Program)이다. 프로그램의 목적은 현재와 미래에 영향력을 주거나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외국 리더급(?)들을 위한 맞춤형 방문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른 국가와의 상호 이해를 구축하는 것이다. 미국은 한 해에 3-4천명이 넘는 외국 참가자들을 초청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1,200명 이상이 참여했다고 한다. 나도 2011년 9월17일부터 10월9일까지 무려 20일이 넘는 일정으로 미국이라는 곳을 다녀오게 된 것이다. 우리 그룹은 총 5명이었고, 여성, 정치, 이민, 환경, 교육 분야에서 일하는 실무자였다. NGO단체의 활동가는 혼자였지만 프로그램 계획할 때 관심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 만나거나 방문하고 싶은 곳은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2회 정도 사전 모임이 있었고, 주제와 일정이 어느 정도 정해졌다. 막판에 참가자 1명이 바뀌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지만 대체로 무난하게 다녀왔다.


 내가 잘못 알았거나 몰랐던 미국의 모습들


  미국에서의 일정은 크게 다섯 개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와싱턴 DC, 뉴욕, 오하이오주 씬시네티, 텍사스주 오스틴,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이다. 보통 주마다 3~5일의 일정으로 나눠져 있었고, 지역마다 방문하거나 교류할 수 있는 이슈는 약간씩 달랐다. 이번 미국연수에서 알게 된 것 중에서 몇 가지 중심으로 말하고자 한다.

  첫째는 미국의 정치체계에 관한 것이다. 최근 한미FTA가 미국연방의회에서 통과되어 한국에서의 비준을 압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의 정치 체계는 한국과 너무 다르다는 데 문제가 있다.1) 예를 든다면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사이에 실질적인 ‘자치’가 확고하다는 것이다. 미국 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주정부의 실질적인 제도 변화뿐이고, 연방 정부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매우 미약하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한국 사회에는 매우 강력한 중앙집권적 체제를 가지고 있어서 만약에 한미FTA가 발의된다면 전 산업 영역으로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반해 미국은 연방정부가 비준을 했다고 해도 주정부는 거부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연방정부에서 주정부를 압박할 수 있는 예산도 없고, 부처도 없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숙박했던 호텔 사용료에는 연방, 주정부, 시정부의 세금이 각각 나눠져서 있었을 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교육이나 복지, 문화, 노동 등의 분야에서 연방정부 역할은 크지 않았다.  

 두 번째는 성조기의 물결이다. 미국 어느 곳을 가든지 대형 성조기가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뉴욕의 높은 빌딩 앞은 물론 거리 마다 성조기는 있었다. 한국 사회는 국경일이나 관공서를 제외하면 지나친 국가이데올로기를 경계하여 태극기 게양을 조심스러워 하는데 미국에서의 성조기 물결은 팍스 아메리카의 상징으로 언제 어디서라도 군대 투입이 가능한 범지구적 군사체제를 확보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임을 자랑하듯이 미국의 국가주의의 단면을 만나는 것 같아서 불편했고 불안했다.

 세 번째는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을 외국인에게도 감추지 않는 자신감(?)이다. 뉴욕의 엘리스 아일랜드2)에 있는 이민박물관은 과거 미국의 관문이라고 할 만큼 1892년부터 1954년까지 이민업무를 처리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이민 심사의 과정에서 온갖 인권 침해적 조사 행태들이 있었다고 한다. 우선 겉으로 건강해 보이지 않는 사람을 가려내고, 강도높은 검사를 받고 이민이 불허되는 사례도 많았다고 한다. 눈을 뒤집고, 피부 질환 여부까지 꼼꼼하게 조사했던 관행에 대해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가이드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Natoinal Undergrond Railroad Freedom Center라는 곳에서는 미국의 노예제도 역사, 실질적으로 노예가 거래되었던 건물까지 옮겨져 전시되고 있었다. 특히 남부와 북부의 경계에 있던 곳에서 진행되었던 노예 탈출 경로와 지원 활동 등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기서도 시설 가이드가 있었는데 매우 강도 높게 흑인에게 자행되었던 인권 탄압에 대한 얘기를 성토하듯이 설명해 주었다. 

 네 번째는 선거제도에 관한 것이다. 연방이나 주정부 의회는 상원과 하원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특히 하원의 경우는 인구비율로 인원 책정이 되기 때문에 10년마다 이루어지는 인구조사와 선거구 조정은 매우 첨예한 이슈가 되고 있었다. 또한 선거운동과 정치 후원제도는 매우 달랐다. 미국은 후보지명을 하기 전에 당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입장과 공약을 내고 후보 경선이 이뤄지고 경선에서 확정이 되면 당에서 후보로 지명되는 절차로 진행되었다. 미국의 정치 후원은 개인의 인기와 능력에 의해서 차이가 있고, 후원금의 제한선이 없다. 그러다 보니 여전히 정경 유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고,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로비스트 역할은 입법과정에서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보였고, 이런 것을 효과적으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미국의 정치 역동성을 제대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다섯 번째는 난민제도에 관한 것이다. 미국은 경제적 난민 등으로 1년에 약 3~5만명 정도가 입국허락을 받고 있다. 각 주마다 인원이 나눠져서 보내지고, 난민 관련 커뮤니티와 선호도, 동일 민족의 분포 등을 고려하여 거주 지역을 정하게 된다. 지원 체계는 약 3개월간 주거공간, 생활에 필요한 자원연계, 사례관리자의 매칭 등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난민 지원 프로그램은 다양한 NGO 단체에게 위탁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난민은 3개월 이내 곧 바로 자립계획을 세워야 하며, 그 외의 복지 지원은 없었다. 그런데 쿠바 난민은 다른 법체계를 통해 지원받는 부분이 매우 다르다고 했다. 또 미국 내에서 난민 신청은 정치적 이유를 제외하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었고, 한국만큼 까다롭다고 했다.

 이 밖에도 와싱턴 DC 스미스소니언박물관 내셔널 몰 주변 공원에서 발야구를 하면서 매우 즐겁게 놀고 있던 대학생 동아리 모습이나 공립 고등학교 사회와 역사 수업시간에 참관하고 학생과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던 것, Urban Morgan Institute for Human Rights at University of Cincinnati College of Law에서 학생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만찬 시간도 매우 흥미로웠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인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관련 단체의 활동가 인턴쉽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광활한 영토를 가진 나라이어서 국내 이동에도 국내선을 이용했는데 2시간이 연착되기도 했고,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개인 배낭 여행은 매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또 미국 남부 텍사스 주에는 150일 이상 비가 오지 않아 단수되는 지역도 있었고, 큰 불이 나서 해마다 황폐화되는 산림과 대지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 아시아계가 3류 인종으로 분류되어 우리 팀을 구경하는 시선들을 느끼면서 인종이나 피부색에 대한 차별을 체감하는 경험까지 다양하고 몰랐던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시간들이었다.  

–  강성의 (사무처장) 


(* 이 글은 제주여성에 기고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