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2.27 한겨레 신문기사 대표 사진

“그렇게 당하고도 남편 가족들 나쁜 말은 안 해요”

 

‘성폭행’ 베트남 이주여성

▶ 만 13살 때 성폭행당해 출산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 2심에서 혼인을 취소당하고 위자료를 물어주게 생겼던 베트남 여성 ㅎ(26)씨가 지난 18일 대법원에서 극적으로 구제됐다. 시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ㅎ씨는 어떻게 혼인 파탄의 책임자로 몰리게 된 것일까. 지난 23~24일 전북 전주에서 ㅎ씨를 돌보고 있는 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들과 ㅎ씨의 시어머니 서아무개씨와 변호인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2003년 10월의 어느날, 베트남 북부 라오까이성 반반현의 한 마을. 이장이 악기를 두드리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축제가 시작됐다.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고 춤을 췄다. 축제를 보러 이웃마을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무리엔 이웃마을에서 친구들과 함께 온 ㅎ(당시 13살)씨도 끼어 있었다.

축제 중 이 마을의 22살 남성이 친한 남성들 20여명을 불러모았다. 이 남성이 ㅎ씨를 지목하자, 무리는 ㅎ씨를 들어올려서 이 남성의 집으로 강제로 데리고 갔다. 이 마을에 사는 타이족은 “때로는 결혼하기 위해서 여자를 납치하기도 하는” 약탈혼 풍습을 가지고 있는 소수민족이었다.(당 응이엠 반, 쭈 타이 선, 르우 홍 지음, <베트남의 소수민족>, 2013년)

ㅎ씨는 3일간 이 남성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풀려난 ㅎ씨는 집으로 돌아갔다. 이 남성의 부모가 결혼을 시키자고 ㅎ씨의 부모를 찾아왔지만 거절당했다. 하지만 임신이 된 사실을 알자 남성 쪽에서 ㅎ씨를 데리고 가서 수개월간 살았다. 남성은 마약과 술에 취하면 부모로부터 돈을 받아 오라며 ㅎ씨를 폭행했다. 견디다 못한 ㅎ씨는 출산을 앞두고 다시 부모 집으로 도망왔다. 하지만 부모는 “아이가 집에서 죽으면 부정탄다”면서 ㅎ씨를 집 앞의 움막에서 살도록 했다. ㅎ씨가 아들을 낳자 남자 쪽의 부모가 자신들의 자식이라며 아이를 데리고 갔다. 남자는 그 뒤로도 ㅎ씨를 찾아와 괴롭히면서 결혼과 돈을 요구했다. 견디다 못한 ㅎ씨는 집을 나와 차로 5시간 떨어져 있는 도시에 있는 식당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 남성과 아이의 소식은 듣지 못했다. ㅎ씨의 나이 14살 때였다.

 

엄마, 남편, 집에 없다” “괜찮다” “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2년 2월, 당시 22살이던 ㅎ씨는 한국에서 온 37살 남성 김아무개씨와 맞선을 봤다. ㅎ씨가 맘에 든 김씨와 시댁 부모들은 결혼을 결정했다. 비자 발급을 기다리느라 ㅎ씨는 그해 8월이 돼서야 한국에 들어왔다. ㅎ씨는 시부모와 함께 전북 김제시의 고물상에서 살았다. 시아버지 박아무개(62)씨와 시어머니 서아무개(62)씨가 고물상을 운영하고, 아들 내외는 일을 도왔다. 김씨는 지적장애가 있었고, 대인관계 능력이 떨어졌다. 시아버지 박씨는 일을 잘 못한다며 김씨를 쇠파이프로 때리거나 뺨을 때리기도 했다. 시아버지 박씨는 계부였다. 시어머니 서씨는 1982년 전남편과 이혼한 뒤 2003년 박씨와 만나 결혼했다. 김씨는 미국에서 10년간 친아버지와 함께 지내다 2011년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아들 김씨는 시아버지와 1년밖에 같이 살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난 24일 찾은 ㅎ씨가 남편 가족과 살던 전북 김제시의 집. 이곳에서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성폭행·강제추행했다. 시어머니는 사건 직후 이사를 가면서 시리아인에게 임대해 줘 지금은 자동차 부품 재활용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이웃사람은 ㅎ씨를 일 잘하고 착한 사람으로 기억했다. ㅎ씨 집 옆에서 교회를 운영하는 목사 내외는 ㅎ씨와 남편 김씨의 중매를 서, 베트남까지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70대인 목사 아내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며느리가 일을 잘혀. 돌방돌방 다니면서.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고 그랬는디”라며 “아들하고 며느리가 둘 다 착해서 잘 지냈어요. 근데 그런 징그러운 일을 당하다니 기가 막힐 일이여. 불쌍해서 가슴이 다 아프네”라고 말했다.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가려 했던 ㅎ씨에게 다시 밤이 찾아왔다. 2013년 1월18일 오전, 시어머니와 남편 김씨가 집을 비운 날이었다. 커피를 가져다주는 ㅎ씨의 손을 시아버지 박씨가 잡아끌어 넘어뜨렸다. 박씨는 “엄마, 남편, 집에 없다”, “괜찮다”, “돈”이라고 말했다. ㅎ씨가 베트남어로 “하지 마!”라고 소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시아버지는 ㅎ씨를 성폭행한 뒤 과도를 가리키면서 손으로 자신의 목을 그어 보이고는 손가락을 입에 댔다. 일주일 뒤인 24일에는 라면을 끓여다 주는 ㅎ씨를 강제로 무릎에 앉힌 뒤 몸을 만졌다. 다음날에는 “성당에 가자”고 ㅎ씨를 속인 뒤에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 “돈”, “베트남 엄마”, “동생, 학교”라면서 돈을 주겠다고 회유했다. ㅎ씨는 성폭행을 당한 직후 경찰에 신고했다.

1~3심 모두 박씨의 ‘친족 관계에 의한 강간과 강제추행’ 혐의를 인정하고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시아버지, 시어머니, 남편의 증언과 변호인의 변론은 ‘2차 폭행’ 그 자체였다. 시아버지 박씨는 “며느리가 나를 먼저 유혹해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면서 범행을 부인했다. 남편은 불결한 환경의 고물상에서 일하다 옴진드기에 의해 피부병이 생긴 것을 “아내가 성병을 옮겼다”고 뒤집어씌우며 부정한 여자로 몰아갔다. 변호인은 “ㅎ씨가 저항했다면 시아버지 박씨의 몸 앞쪽에 상처가 있어야 하는데, 등 뒤쪽에만 손톱자국이 있었다”면서 강간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ㅎ씨의 베트남 부모의 호적에 등록된 2007년생 여동생이 ㅎ씨의 딸일 가능성이 있다는 등 근거가 없는 여러 의혹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주장을 모두 배척했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는 한국말로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해 보인다. 피고인은 키 181㎝, 몸무게 96㎏의 거구였다. 또 피해자가 성폭행 전에 베트남인 친구에게 신고를 부탁하기도 했다”며 “위와 같은 폭행과 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하게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시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하고도청소년기 성폭행 출산 말 안 했다고혼인취소 1·2심 판결났던 공익변호사와 거물급 변호사 도움대법원에서 극적인 승소 반전

씨는 전북의 한 쉼터에서 생활베트남 돌아가도 냉대받을 게 뻔해한국에서 살아가려 귀화 타진필요에 의해 이주여성 데리고 왔다내치는 일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시아버지가 성폭행할 때 임신선 발견

 

그러나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시아버지의 성폭행은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왔다. 박씨가 ㅎ씨를 성폭행할 때 ㅎ씨의 아랫배에 남아 있던 임신선을 본 것이다. 임신 중 배가 팽창하면 모세혈관이 터져 가느다란 보랏빛 선이 생긴다. 박씨는 이를 변호인에게 알렸고, 전해 들은 시어머니 서씨도 “함께 목욕탕에 가면 젖가슴과 아랫배를 수건으로 가리고 절대 보여주지 않았다”면서 거들었다. 시어머니는 남편 가족의 지인을 통해 200만원을 주고 사람을 고용했다. 이 업자가 베트남에 있던 고향 마을 사람 3명으로부터 “ㅎ씨와 결혼한 남자가 데릴사위로 들어와 살았는데, 이유를 모르지만 자살을 했다. 둘 사이에 아들이 있는데 지금 누구와 사는지는 모른다”는 동일한 내용의 자필 사실확인서를 받아왔다. 이를 근거로 시아버지 쪽 변호인은 성폭행 사건 변론에서 “ㅎ씨의 진술이 믿을 만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확인서는 어떤 재판에서도 사실로 인정받지 못했다.

ㅎ씨는 증인으로 나간 성폭행 항소심에서 출산 사실을 부인했다. 하지만 혼인 취소 소송에서는 이를 인정했다. ㅎ씨는 모해위증죄로 기소돼 2014년 전주지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아 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김은경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ㅎ씨가 ‘결혼이 파괴될까봐 걱정돼서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시어머니 서씨와 남편 김씨는 성폭행 항소심이 진행되던 2013년 8월 ㅎ씨가 “출산 사실을 숨기고 돈을 목적으로 사기결혼을 했다”면서 혼인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중매를 해준 이웃의 목사도 고소해 300만원의 벌금을 물렸다. 1심은 혼인을 취소하고, ㅎ씨가 남편에게 위자료 800만원을 갚으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사실혼과 출산 전력은 혼인을 결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소인데 이를 남편에게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원고가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피고와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민법 제816조 제3호에선 혼인을 취소할 수 있는 사유 중 하나로 “사기로 인하여 혼인의 의사표시를 한 때”를 들고 있다.

2심에선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의 요청으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김연주 변호사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여성위원회의 위은진 변호사가 공익변론에 나섰다. 변호인들은 “ㅎ씨가 베트남 현지 결혼중개업자에게 자신의 출산 사실을 말했기 때문에 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도 위자료만 300만원으로 낮춰주었을 뿐 1심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건조한 문체의 2심 판결문에서도 ㅎ씨의 억울함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나온다. “원고(남편 김씨)가 독립적으로 생활하지 못하고, 원고의 계부가 피고(ㅎ씨)를 성추행하는데도 (원고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급기야 피고가 원고의 계부로부터 강간을 당하기까지 하였음에도 원고와 원고의 어머니는 피고가 받은 충격이나 상처를 위로하고 다독여주기는커녕 ‘피고가 원고의 계부를 유혹하였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피고를 유기하다시피 하였다. 피고는 이로 인하여 원고와 피고의 혼인 관계가 파탄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반소로서 이혼 및 위자료의 지급을 구한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공감의 요청으로 천경송 전 대법관(법무법인 화우), 김용균 전 서울가정법원장(바른), 전주혜 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태평양) 등 거물급 변호사들이 무료로 변호인단에 참여했다. 대법원은 극적으로 판결을 뒤집었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대부분인 대법원도 ‘출산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해서 출산의 경위를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사기결혼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지난 18일 “성장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아동 성폭력 범죄 등의 피해를 당해 임신을 하고 출산까지 하였으나 이후 그 자녀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양육이나 교류 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이러한 출산의 경력이나 경위는 개인의 내밀한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명예 또는 사생활 비밀의 본질적 부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두고 법조계 일부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혼전 출산이란 중대한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맞느냐는 것이다. 이에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대법 판결도 출산 사실을 알리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 혼인 취소와 손해배상 청구 사유가 된다는 점을 전제로 삼고 있다”며 “다만 ‘아동 성폭력 피해로 인한 출산일 경우에만 예외’라는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이 기준으로 달라질 판례는 극소수”라고 반박했다.

 

시어머니와 그 변호인을 만나다

 

대법원이 원고 패소 취지로 판결을 한 것은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에서 바뀔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남편 쪽 변호인은 새로운 사실을 입증해 판결을 다시 뒤집으려 한다. 남편 김씨의 변호사는 전남 전주시의 자신의 사무실에서 시어머니 서씨와 함께 <한겨레> 기자와 만나 “ㅎ씨가 베트남인인 지인에게 ‘베트남에서 불임수술을 받았다’는 말을 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파기환송심에선 ㅎ씨의 신체 감정을 요청할까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서씨는 “ㅎ씨가 한국 남편과 사기결혼 해서 국적을 취득한 뒤에 가정폭력을 유도해서 이혼을 하고 위자료를 받아낸 다음에 베트남에 있는 실제 남편 또는 남자친구를 불러들이려는 계획으로 아들과 결혼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어머니와 시아버지는 사건 이후 이혼한 상태다.

시아버지와 이혼을 했는데도 왜 시어머니와 남편은 ㅎ씨를 미워할까? 주목할 만한 점은 남편 김씨와 시어머니는 시아버지의 강간 사건이 벌어진 직후에 이미 ㅎ씨와 결별할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ㅎ씨의 혼전 출산이 드러나지도 않은 시점이다. 시어머니 서씨는 <한겨레> 기자와 만나 “며느리가 베트남에 돈을 보내야 한다고 하고, 남편에게 폭행을 유도하고, 고졸 학력이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나는 등 이상한 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 와중에 시아버지 성폭행 사건이 터지니 더는 같이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결혼을 위해 고향을 떠나 언어도 다르고 친척도 없는 만리타국에 온 베트남 여성을 성폭행 피해자가 됐다고 해서 내쫓겠다는 태도다.

ㅎ씨는 성폭행을 당한 2013년 1월25일부터 경찰을 통해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에 인도돼 현재까지 센터에서 운영하는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쉼터에서 한국어도 배우고 직업교육도 받으면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2심이 확정됐다면 ㅎ씨의 책임으로 혼인이 취소된 것이기 때문에 베트남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겠지만, 대법원에서 승소해 귀화의 가능성이 열렸다. 3년 넘게 ㅎ씨를 돌보며 소송을 이끌어온 김은경 전북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ㅎ씨가 귀화하려는 이유는 “고향에서 이미 출산과 결혼 사실이 알려졌는데, ㅎ씨가 이혼하고 돈도 없이 돌아가면 냉대밖에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쉼터 쪽에선 ㅎ씨가 대법원 선고 직후 긴장이 풀려 독감에 걸렸고, 성폭행 관련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다며 인터뷰는 고사했다.

김 대표는 “시어머니 쪽은 ㅎ씨를 나쁘게만 이야기하고 있지만, ㅎ씨는 지금도 남편과 시어머니를 절대로 나쁘게 말하지 않을 정도로 순수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국민의 필요에 의해서 외국인 여성과 이주노동자들을 데리고 왔다가, 필요가 없어졌으니 다시 내치는 일을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라고 물었다.

 

전주/김지훈 서영지 기자 watchdog@hani.co.kr

 

  1. 2. 26() 한겨레 신문

링그 주소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32352.html?_fr=mt2